도서소개

아, 이거구나, 영화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 머리와 가슴이 텅 비면서 서늘한 바람이 스치는 순간, 부조리한 시대와 싸워야 한다는 다짐을 주는 순간, 눈물 흘리며 치료받는 그 깨달음의 순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깨달음의 순간이 며칠, 아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손에 쥔 듯한 깨달음의 순간을 얻는다. 이 책은 그 순간을 ‘시네마 에피파니’라는 용어로 호명한다.영화는 에피파니의 순간을 통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여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깨닫게 하는 귀중한 예술이다. 김응교 교수는 신학과 문학의 사유인 에피파니를 영화에 접목시킨다. 종교적 깨달음을 주는 에피파니의 순간, 역사와 사회를 깨닫게 하는 혁명적 순간, 사라지는 것들의 선연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시네마 에피파니의 순간을 포착한다. 1991년부터 2021년까지 30년 동안 저자가 본 무수한 영화 중에 이 책에 담긴 30여 개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질문과 메시지를 던진다. 늘 대지에 발붙인 글을 쓰고, 역사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고 목소리 내기를 마다치 않는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영화를 통해 오늘 이 땅의 현실을 짚어보는 일을 잊지 않는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괄시받는 이의 분노를, 〈햄릿〉에서 애도의 심리학을, 〈공자〉에서 시진핑의 중화주의를, 〈신문기자〉에서 아베의 도금한 민주주의를, 〈레미제라블〉에서 숭고미의 반복을,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빈자, 난민, 동성애자의 이웃을, 〈기생충〉에서는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공간의 고현학과 함께 카프카 소설의 『변신』을 대입해본다. 특히 명작과 수작뿐만 아니라 국뽕 영화를 국가 주도와 국민 주도로 분류하는 2부의 도입부와 명작은 아니지만 좋고 재밌는 ‘조코잼 영화’라는 별칭을 붙인 〈말모이〉에 대한 글은 이채롭다. 이 책의 시네마 에피파니 순간이 분명 독자 여러분에게도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영화를 보는 데 새로운 시선 하나를 더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꽤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차례

1부 죽여주는 캐릭터, 윤여정 〈화녀〉, 〈죽여주는 여자〉, 〈미나리〉 2020 〈69세〉 10초의 에피파니 2020 〈아웃브레이크〉, 〈컨테이전〉, 〈월드워Z〉, 〈킹덤〉 팬데믹 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사라질까 2019 〈기생충〉과 카프카 소설 공간의 고현학과 카프카 소설 2019 〈신문기자〉 아베 ‘도금 민주주의’에 맞선다 1992 〈시티 오브 조이〉 만남의 기쁨과 어떤 시혜의식 1985 〈보헤미안 랩소디〉 마이 프렌드와 니체 1980 〈택시운전사들〉 다중의 단독자들 1976 〈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코세이지와 괄시받는 이의 분노 1970 〈기독청년 전태일〉 그 밀알 한 알 2부 국가 주도 국뽕 Vs 다중 주도 국뽕 1960 〈싸이코〉 히치콕 판타지 1954 〈디엔 비엔 푸〉 끈질긴 항전과 지루한 패배 1944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명랑한 폭력과 장르 파괴 1942 〈말모이〉 조선말 큰사전과 조코잼 영화 194X년 〈이방인〉, 〈페스트〉 부조리에 맞서는 카뮈의 저항 1940 〈글루미 선데이〉 우울한 부다페스트 1933 〈암살〉 속사포와 (애국)계몽 오락영화 1920 〈연인〉 지워지지 않는 원초적 사랑 1917 〈1917〉 우연과 현실의 연속 3부 1895 〈명성황후〉 문화콘텐츠, 영화와 뮤지컬 1877 〈라스트 사무라이〉 사라지는 사무라이 1815-1832 〈레미제라블〉 숭고의 데자뷰 1789 〈마리 앙투아네트〉 미완성의 혁명과 불행한 여성 1771 〈괴테〉 질풍노도와 젊은 베르터의 고뇌 1750 〈미션〉 두 사람의 표정, 그리고 엔니오 모리꼬네 1637 〈사일런스〉 시네마 에피파니 12세기 〈햄릿〉 애도의 심리학 1182-1226 〈프란체스코〉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BC 551-479 〈공자〉 춘추전국시대와 시진핑 중화주의 BC 1010-971 〈다윗 대왕〉 다윗에 대한 네 가지 기억


저자소개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수락산 갈매나무 숲길을 좋아하고 그 기슭에서 시와 산문을 쓰는 서생이다.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하고 귀국하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신동엽학회 학회장으로 있다. 2019년 1월 봄학기 캐나다 트리니티웨스턴대학 VIEW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했다. 2017년 [동아일보]에 「동주의 길」, 2018년 [서울신문]에 「작가의 탄생」을 연재했다. 신동엽 기념사업회 이사로 작은 역할을 맡고 있다. 스무 살에 야학에서 펼친 책 한 권, 그 우연한 몰두는 그에게 평생의 매혹이 되었다. 『신동엽 전집』에 빠진 몇 년 뒤 석사논문 「신동엽 엽구 - 쟝르론을 중심으로」를 낸 그는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인물전 『민족시인 신동엽』을 내고, 이어 인병선 여사의 고증을 받은 『시인 신동엽』을 냈다. 이후 논문을 엮은 『사랑과 혁명의 시인 신동엽』을 냈다. 시집 『씨앗/통조림』,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평론집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나무가 있다-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 『곁으로-문학의 공간』, 『그늘-문학과 숨은 신』, 『일본적 마음』,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일본에서 『韓國現代詩の魅惑』 등을 냈다. 번역서로 다니카와 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어둠의 아이들』,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