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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수천 년에 걸친 전 세계적인 목적을 품고 계신다는 사실에 흠뻑 빠져서 가던 길을 멈추어본 경험이 있는가? 주 예수님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나라에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멈추어본 경험이 있는가? 이 위대한 드라마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운가?
- 1장 선교는 부차적 사명이라는 오해 p.26
성도들이 선교에 관해 무관심해지기를 원하지 않기에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할 만한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가 얼마 후에는 “누구나 선교사입니다”로, 그 후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선교입니다”로 바뀔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와 같은 포괄적 접근은 선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 너무 좁아지지 않게 막아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세계에서 가장 멀고 어렵고 두려운 지역을 향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 2장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선교라는 오해 p.51
내 삶을 들여다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나의 헌신이 나를 더 좋은 남편, 아버지, 친구, 상사, 직원, 이웃이 되게 했다. 하나님을 알아가겠다고 결심하면 할수록, 또 열방에 복을 주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결심하면 할수록, 나는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내 주변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더욱 비춘다. 하지만 만약 내가 하루의 필요와 기회에만 집중한다면, 우연히라도 열방에 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 3장 선교는 다른 일상과 경쟁한다는 오해 p.76
단기 선교 경험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세계 선교를 소개하는 도구다. 성도라면 누구나 단기로 직접 참여함으로써 위대한 사명을 위해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사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장기 선교 현장을 섬길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기도하는 선교사, 후원하는 사역, 문화의 경계를 넘는 복음 사역자를 필요로 하는 종족을 방문함으로써 복과 도전과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디지털 기술과 가상의 소통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낸다. 지혜롭게 진행한다면 단기 선교는 중요한 (대체가 아닌) 보완 작업으로서 미전도 종족 안에 성육신적으로 존재하게 한다.
- 4장 이제는 단기 선교가 더 적실하다는 오해 p.106-107
선교는 항상 예쁜 그림만 그리지 않는다. 긴장, 갈등, 죄악 된 행동이 선교지의 가정과 교회에서 매일 수시로 일어난다. 그런 일이 선교 현장에서도 일어나면 우리는 정말 놀라고 만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거장 선교사들조차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선 것을 보라.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해 사용하시는가다. 뿐만 아니라 부르신 각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기 원하시는가다. 선교 역사에는 이름 없는 사상자들이 많다. 그중에는 산산이 부서지고 빗나가고 절망한 선교사들도 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의 선교사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 5장 선교사는 독특하고 희귀하고 거룩한 사람이라는 오해 p.120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며, 땅의 모든 민족에게 전할 소망의 메시지를 주셨다. 우리가 다른 문화에 진지한 관심을 품고 있다면,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행위다. 우리의 주된 질문은 더 이상 “선교는 할 가치가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이 급진적인 메시지를 정당하게 대우하고 있는가?”여야 한다.
- 6장 선교는 그 문화권에 해를 끼친다는 오해 p.156
우리는 매우 큰 퍼즐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실 때 머리가 되려고 하지 말자. 모두가 기꺼이 무명으로 섬기기를 바란다. 지상명령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에 관하여 말하자면, 세계 복음화는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일어난다. 땅의 조급함이 아니라 하늘의 절박함으로 섬기자. 바람이 거슬러 불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리저리 떠다니는 얼음판 위에서 거꾸로 표류하고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우리의 발밑에는 견고한 땅이 있다. 선교는 하나님의 권위와 권능에 뿌리내린다.
- 7장 선교는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는 오해 p.171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명령’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권위자의 명령이다.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듯,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보내신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임무를 묘사할 때 두 단어를 사용한다. ‘아포스텔로’(apostello)는 확실한 권위를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라고 보냄을 받은 자의 역할에 강조점이 있다. ‘펨포’(pempo)는 보내는 행위와 더 관련이 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서 예수님은 강조를 위해 두 단어를 조합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apostello)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pempo).”
- 8장 선교사 파송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오해 p.198-199
교회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비, 사랑, 세상을 심판하실 권위를 증명하는 통로가 되는 영광을 누린다. 그리스도는 언젠가 우리와 함께 나란히 예배할 부족과 민족과 열방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우리를 초청하시고 명령하신다. 믿음으로 확신으로 기쁨으로 반응하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분의 영광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면서 삶을 드리자. 우리의 하나님이 소중하시기에, 지상명령도 여전히 소중하다.
- 끝맺는 글_ 지상명령은 여전히 중요하다 p.232